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아메드 아메드 푸르,바벡 아메드 푸르,케다 바레크 데파이 /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나의 점수 :

09.05.10일에 관람.
조만간 감상문 예정

by 요새배나옴 | 2009/05/13 11:23 | 나의 생각 | 트랙백 | 덧글(0)

4.18 달리기 교양 자료로 썼던 발제문

4.18 달리기 발제

 

여러분 반갑습니다. 학생회도 없고 따라서 이러한 교양 토론회 자리를 만들기 위해 참 우여곡절이 많았을 텐데, 결과적으로는 진행하게 되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정이 급박하게 잡혀서 또 실제 행사에 참여할 계획이신 분들이 적어서 이 자리가 좀 당황스러우실 수는 있겠지만, 오늘의 이야기를 통해 4.18 달리기라는 고려대학교의 연례 행사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드셨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 4.18 달리기라는 주제는 논쟁 거리의 종합 선물세트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관점에서 이 행사를 해석하고 또 이용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따라서 비록 토론회의 성격을 가지기는 하지만 이 문제는 단순히 찬반 혹은 참여•불참여의 문제로 이분법화 시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발제를 3 차원으로 나누어 하기로 했는데 부족한 건 마찬가지 일 것 같습니다. 하여간 4.18과 관련하여 나올 수 있는 수많은 차원의 이야기들 중 하나를 선택하여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결론은 제가 생각해도 좀 극단적일 수도 있는 것 같네요. 허허

 

4.18은 하나의 의식입니다. 과거에 있었던 기억을 다시 살려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죠. 어색하나마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처용을 기리기 위해 처용무를 추는 것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현상이 그러하듯 4.18달리기는(처용무도) 단순히 과거의 기억을 복원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현재적 의미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오늘날 4.18 달리기가 갖는 의미는 고려대학교 학생의 통과의례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4.18 달리기는 사발식, 고연전 등과 함께 진정한고려대학교 학생이 되기 위해서 꼭 거쳐야 되는 과정 중 하나입니다.(라고들 합니다.)

 

여기서 질문! 여러분이 생각하는 진정한 고려대학교 학생의 모습은 무엇인가요? 아마 다양한 의견이 나올 것 같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는 여러분의 대답을 들을 수 없으므로, 저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다양한 특징들을 두 가지 모델로 나누어 보겠습니다.

먼저 민족 고대라는 Ideal Type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많이 사라졌지만 예전에는 고려대 학생 하면 민족이라는 가치를 상당히 우위에 둔다는 인식이 강했지요. 스스로에게 민족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생각하여 통일과 같은 주제에 관심이 많고, 여기서 파생되는 여러 사회 문제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행동양식으로는 막걸리와 풍물로 대표되는 촌스러운문화를 들 수 있겠네요. 또 공동체 의식을 통한 사회자본이 강하다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겠지요. 이와 같은 민족 고대의 정체성에서 4.18을 해석한다면 4.18은 독재라는 민족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 선배들이 선도적으로 나섰던 행위로 이해할 수 있겠네요. 아직도 널리 사용되고 있는 4.18 구국(救國)대장정이라는 용어가 이를 잘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이와 반대로 최근에는 글로벌 KU라는 구호가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구호가 추구하는 글로벌 리더로서의 고려대학교 학생이 제가 나눈 또 다른 Ideal Type입니다. 글로벌 리더란 어떤 사람이냐? 많은 이견이 있겠지만 영어능력이 뛰어나고( 3외국어 능력도 있어야 된다고 현 총장님께서 작년에 이야기 했던 거 같네요.) 자기 전문 분야에 능통하며 대인관계도 국제적인 사람이 아마도 이상적인 글로벌 리더인 것 같습니다.[1] 그런데 이러한 조건 하에서 4.18이 갖는 의미는 그리 크지 않아 보입니다.

 

이상적인 고려대학교 학생의 모습을 단 두 가지 모델로 설명하는 데에는 확실히 무리가 있습니다. 위 두 가지 모델도 완전 배치되는 것처럼 서술하였지만 실제로는 서로 공유하고 있는 부분도 많지요. 또한 어떤 이상적인 모습에 꼭 맞는 개인이란 존재하지 않겠지요. 오히려 그 기준에 맞추어 개개인을 평가한다면 그것은 폭력이 됩니다. [2]

그럼에도 제가 굳이 이러한 틀을 짠 것은, 최근의 4.18이 민족고대의 유산과 글로벌 KU로의 지향이라는 두 가지 정체성 사이의 어디에선가 표류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중요했던 가치들이 이제는 중요하지 않게 되면서 4.18 달리기라는 껍데기는 남아있지만 그 안에 담긴 고려대학교 학생의 정체성이라는 알맹이는 사라졌습니다. 과거 고려대학교 학생들은 어떠 어떠한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가치를 실현하는 방법으로써의 4.18에 임하였다면, 오늘날 고려대학교 학생들은 그냥 고려대학교 학생이기 때문에 4.18을 뛴다는 것이지요.(극단적으로 봤을 때 말입니다. 우리는 이 중간 어딘가에 서 있겠지요.) ((물론 일각에서는 구국대장정 대신 민중해방대장정이라는 표현을 통해 보다 계급적인 측면에서 4.18을 바라보려는 시도들도 있습니다.))

결국 오늘날의 4.18이라는 빈 껍데기 속에 채워진 속은 학벌사회의 최상층에 있다는 고려대학생의 오만함과 그것이 주는 허영심의 발로뿐입니다. 총학생회나 일부 학생들은 나름대로 기조를 정하고 현실적인 구호(민족 고대의 정체성을 계승하든 그렇지 않든)를 찾으려 하지만 대세를 거스르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부정적인 모습들이 있습니다.(이것들은 다른 발제에서 잘 지적해 줄 테니 패스!)

 

당신에게 4.18 달리기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 하자면 1학년 때는 뭣 모르고 풍물패 길놀이만 하고 묘지 참배는 하지 않았다가 선배들에게 엄청 혼났습니다. 그 이후 작년과 재작년 모두 나름 나만의 의미를 찾기 위해 참여했었죠. 그리고 올해 내린 결론은 굳이 뛰지 않아도 될 것 같다.’입니다.(일종의 포기 일수도 있겠습니다.) 차라리 따로 날 잡아서 친구들과 함께 버스 타고 참배하러 가는 것이 더욱 유익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이렇게 부끄러운 고학번의 날림 발제가 끝났군요. 사실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4.18을 뛰자, 뛰지 말자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스스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대학생의 모습이 무엇인지?’, ‘그것은 과연 주체적으로 형성된 것인지?’, ‘고려대 학교의 학생들을 어떤 하나의 정체성으로 묶는다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등에 관한 것들이었습니다. 여러분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지만 하여간 오늘 경험을 통해 여러분 사고의 폭이 넓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1]글로벌 리더의 조건이라고 하면 영어밖에 떠오르는 것이 없어서 네이버를 좀 뒤졌습니다.

[2]단적으로 김연아를 예로 들어 봅시다. 글로벌 KU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녀는 이상적인 고대생이겠지만, 민족 고대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녀는 상당히 부족한 고대생이겠지요.

by 요새배나옴 | 2009/05/10 22:43 | 나의 생각 | 트랙백 | 덧글(0)

My Study(2009)

E.P. Thompsom - My Study(1973)

톰슨은 나의 연구로 번역되지만 내가 쓴 My Study는 나의 공부 쯤이 될 것 같다.

그렇다.

70~80년대 그 수 많은 서양사 전공자들이 필연적으로 사회경제사 혹은 노동사를 주제로 선택했던 이유는

한국 사회 현실을 외면한다는 원죄의식 속에

탈곡기를 두드리는 행위라도 해야만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의 나도 비슷한 심정일지 모르겠다.

운동을 접는다는 것?

나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을 해 본적은 없지만 어느새 나는 그런 존재로 각인되었다.

그것은 나 스스로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운동권과 비운동권(비권에 대한 나의 정의는 조금 다르다. 나중에 기회가 있다면...)을 나눈다는 것의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추상적인 생활 양식의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나는 운동권의 라이프 스타일에 속하는 것도 아니고
비권의 라이프 스타일에 속하는 것도 아니고
소위 운동을 접은 사람의 라이프 스타일에 속하게 된다.

모르겠다.

내가 공부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박정희 정권을 화염병으로 무너뜨릴 용기가 없어, 이론으로 무너트리기 위해 유학을 갔다는 모 교수처럼

나의 공부로 현실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 것일까?

용기의 차원이 아니라 방법을 전환한 것일까?

교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한다는 것.

어쩌면 나는 대학생이 가진 계급적 한계(다양한 관점이 존재하지만..)를 벗어나지 못했고

어느새 나 스스로를 정당화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by 요새배나옴 | 2009/05/10 12:47 | 나의 생각 | 트랙백 | 덧글(0)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